1억 유로” 투자로 터키 물류 거점 점령하는 한국… 중동 리스크 속 전략적 포석

김정인 에디터 | | 경제소식

1억 유로” 투자로 터키 물류 거점 점령하는 한국… 중동 리스크 속 전략적 포석

수출입은행, 도로공사에 1억 유로 금융 지원… 터키 고속도로 운영사업 본격화

127km 도로망 건설·운영으로 고부가가치 서비스 진출 첫 사례

중동 물류 요충지 확보, 중국·인도와 인프라 경쟁에서 주도권 확보 가능성

한국수출입은행

글로벌 인프라 전쟁, 한국의 새로운 움직임

한국수출입은행이 20일 공식 발표한 1억 유로(약 1,400억 원대) 규모의 터키 고속도로 사업 금융 지원은 단순한 자금 투자를 넘어선다. 한국도로공사가 주도하는 ‘크날르-말카라 고속도로 건설·운영 프로젝트’는 국내 건설·인프라 기업들의 수익 구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 북서부 마르마라 지역을 가로지르는 총 127킬로미터 규모의 이 고속도로는 2018년 준공된 차나칼레 현수교와 직결되어, 거대한 교통 네트워크를 완성하게 된다.

중국과 인도가 개발도상국 인프라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단순 건설 수주를 넘어 ‘운영·관리 사업’으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은 전략적 의미가 크다. 수은 관계자는 “중동 정세 불안 속에서도 물류 요충지인 터키의 전략적 중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으며, 이는 글로벌 지정학적 변화를 읽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왜 터키인가… 중간 회랑의 핵심 거점 전략

North Marmara Highway(NMH)

터키는 단순한 건설 수주처가 아니다. 중동·유럽·아시아를 연결하는 ‘중간 회랑(Middle Corridor)’의 핵심 국가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시대에 물류의 중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란 제재,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 등 주변국 정세 불안 속에서도 터키는 교통 기반 시설 확충을 적극 추진 중이다.

도공이 확보한 127km 고속도로 건설·운영 계약은 이러한 터키의 인프라 수요와 한국의 기술 역량이 만난 결과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것이 지난해 11월 한-터키 정상회담 당시 체결된 ‘도로 인프라 협력 업무협약’이 실제 수주로 이어진 사례라는 것이다. 즉, 외교적 논의가 경제 실적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는 의미다.

고부가가치 서비스 전환, 국내 건설사의 돌파구

그동안 국내 건설사들은 ‘건설 수주’에만 집중해왔다. 설계-시공-준공까지 고정된 금액을 받고 현지를 떠나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완공 후 ‘운영·관리’라는 장기 수익 구조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도공이 이 사업에서 127km 도로의 장기 운영·관리를 맡게 되면서, 매년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해외 인프라 발주처들은 유사 사업 경험을 입찰의 핵심 평가 항목으로 삼는다. 도공이 터키에서 축적하는 고속도로 운영 경험은 곧 후속 대형 사업 수주의 무기가 된다. 수은이 1억 유로라는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는 배경도 여기 있다. 건설사와 도로공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터키의 추가 인프라 프로젝트에 공동 입찰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려는 전략적 판단인 것이다.

중국·인도와의 인프라 경쟁, 한국은 어디로

국제개발금융기구(IDB) 통계에 따르면, 개발도상국 인프라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5~40% 수준으로 절대적이다. 인도도 빠르게 추격 중이다. 한국은 기술과 자금력에서는 뒤처지지 않지만, ‘경험’과 ‘네트워크’에서는 아직 미흡한 상태다. 터키 사업은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는 전략적 첫걸음이다.

수은의 지원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단순히 건설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운영·관리 사업까지 포함한 장기 금융 지원 구조를 만들었다. 이는 도공뿐만 아니라 함께 컨소시엄을 이루는 국내 대형 건설사들도 터키에서의 사업 경험을 축적하게 되고, 이것이 중동 지역의 추가 프로젝트 수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리스크는 없을까… 지정학적 변수 관리 과제

터키는 NATO 동맹국이지만, 동시에 러시아, 이란과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있다. 최근 중동 갈등 확대,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도공의 고속도로가 테러나 정치적 불안으로 운영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또한 환율 변동성도 변수다. 1억 유로 규모의 사업에서 환율이 1% 변동하면 약 14억 원대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수은은 이러한 리스크를 충분히 고려해 금융 구조를 설계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장기 운영 과정에서 터키의 경제 상황 악화나 추가 외환 위기 발생 가능성도 모니터링 대상이다.

한국 인프라 기업의 미래 경쟁력, 운영 경험에 달려

이번 사업의 진정한 의미는 ‘숫자’보다 ‘구조’에 있다. 1억 유로도 중요하지만, 이 자금이 한국 기업들에게 어떤 경험과 신뢰도를 쌓아주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터키에서 127km의 고속도로를 5년, 10년, 20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면, 그 경험은 중동 지역의 차기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 수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은이 강조한 “우리 기업의 해외 수주 영토를 넓히고 양국 간 경제 협력을 공고히 하는 발판”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이는 건설-운영-유지관리라는 전 주기적 사업 모델로의 전환, 즉 한국 인프라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향후 한국수출입은행은 이와 유사한 운영·관리 사업 진출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이는 단순히 건설 수주 규모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건설-운영-수익 창출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는 시도다. 중국과 인도가 주도하고 있는 글로벌 인프라 시장에서 한국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자, 국가 간 경제 협력을 심화시키려는 외교적 노력이 함께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터키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단순히 도로공사나 건설사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향후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추가 인프라 수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아니면 단순 일회성 프로젝트에 그칠지를 결정할 수 있는 시험대인 셈이다. 변화하는 글로벌 인프라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과 경쟁력이 이 사업의 성과 여부에 상당 부분 달려 있다는 점에서, 이번 1억 유로 지원은 한국 산업의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중요한 첫발이라 할 수 있다.